지식의 지평

기획특집

포퓰리즘의 도전과 시민교육의 대응

37호 - 2024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모경환

1. 머리말

  2024년은 전 세계 76개국에서 약 40억 명이 투표하는 ‘슈퍼 선거의 해’이다. 올해는 각국 선거에서 포퓰리즘이 ‘광풍’이라고 불릴 만큼 득세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포퓰리즘 지도자들이 통치하는 인구가 17년 전 1억 2,000만 명에서 현재 20억 명 이상으로 증가하였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포퓰리즘의 강도는 지난 20년 동안 두 배로 증가하였다(『한겨례신문』 2024. 7. 14일자).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기반이 취약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민주주의 전통이 깊은 국가인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관찰된다(강원택 2021).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포퓰리스트 정치인인 도널드 트럼프가 부각된 사례와,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당시 찬성 측이 인종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조한 포퓰리즘 전략을 채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 Institute)의 2023년 보고서와 미국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퇴조는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으로 간주된다(김현섭 2023). 2024년 6월 6일부터 9일까지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포퓰리스트 극우정당이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는 경제적 양극화와 이주 및 난민 정책에 대한 불만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오태현 2024). 포퓰리즘이 정치적 맥락에서 확산된다면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포퓰리스트 정부 아래에서는 선거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심의민주주의의 수준이 후퇴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포퓰리즘이 불평등과 비참여 문제를 해결하여 평등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의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구본상 2024). 

현대 민주주의의 퇴조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나타내며, 이러한 위기는 제도적 요인과 시민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 또한 제도와 시민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탐색해야 한다. 포퓰리즘은 단순히 권위주의적 성향을 지닌 정치지도자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포퓰리즘적 태도’를 고려해야 비로소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포퓰리즘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리더십에 의해 나타날 수 있지만, 일반 시민 또한 ‘잠재적 포퓰리스트로서의 인민’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평상시에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국민의 포퓰리즘적 태도가 심각한 사회적 위기나 불안정성이 발생할 때 특정 이슈와 정치지도자를 촉매로 하여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김주형·김도형 2020: 64). 이 글에서는 포퓰리즘을 시민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포퓰리즘이 시민적 규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시민교육 전략을 논의하고자 한다. 

  포퓰리즘 정치의 분석은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Mudde and Kaltwasser 2017; 박상영 2023). 공급 측면의 포퓰리즘은 포퓰리스트 지도자나 정당이 형성하며, 수요 측면에서는 포퓰리즘 이념을 수용하는 시민들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시민교육은 공급 측면의 포퓰리즘보다 수요 측면의 포퓰리즘 확산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선거구 재편이나 정당 체제 개편과 같은 정치제도 개혁이 공급 측면의 포퓰리즘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면, 시민교육은 포퓰리즘 성향을 지닌 시민사회 및 시민들이 주도하는 수요 측면의 포퓰리즘에 적합한 대응책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요 측면의 포퓰리즘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2. 포퓰리즘의 부상과 시민적 규범

  포퓰리즘은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퇴보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으며, 한국은 포퓰리즘이 발생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입소스(IPSOS)가 2023년에 2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포퓰리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반감이 증가하고 있으며, 반엘리트 정서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체제가 붕괴되었다고 믿는 비율이 2022년 56%에서 2023년 66%로 증가하였다. 또한 국가 경제가 권력자와 부유층에게 유리하다는 항목에는 76%가 동의하여 조사 대상 국가들 중 다섯 번째로 높은 비율을 기록하였다. 더불어,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위반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항목에 66%가 동의하여 조사 대상 국가 중 세 번째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반기득권 해결책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다(구본상 2024). 위 조사에서 사회 지도층인 정치, 경제, 학문, 언론 분야의 엘리트들은 ‘여러 중요한 사안에 대해 유사한 관심사와 견해를 가진 사람들로 밀접하게 연결된 집단’이라는 진술에 대해 77%가 동의를 표명하였으며, 이는 조사 대상 국가들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간의 차이가 매우 두드러진다. 이러한 정서적 양극화는 부정적 당파성과 결합되어, 상대 정당 및 후보에 대한 혐오가 정당 지지 및 투표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강화하며 민주주의 정치 과정이 ‘선과 악’ 또는 ‘우리와 그들’의 대립으로 인식되도록 유도한다. 유권자들이 당파적 이익을 민주주의의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은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강력한 대통령제와 승자독식의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당파적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진영으로 나뉘는 정치적 양극화, 심화되는 정서적 양극화 및 부정적 당파성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의 퇴행을 초래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권혁용 2023).

  포퓰리즘의 부상에 기여하는 공통적인 요인은 일반 대중이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과 혐오감, 일반 대중과 기득권 간의 사회적 및 경제적 격차의 심화, 그리고 대중의 의견이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오랜 기간 국민이 카리스마 있는 리더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을 추종하고, 이들을 정치적 리더로 기꺼이 선출하는 심리를 활용해왔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외형적으로 정당제 민주주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퓰리스트 리더에 의해 포퓰리즘적 정치가 더욱 두드러지게 운영되고 있다(윤정인 2017).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약화, 침식, 쇠퇴 등으로 통칭되며 이는 선거의 신뢰성과 법치주의의 실천을 포함한 주요 정치 제도의 약화를 의미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기초를 형성하는 시민적 규범이 퇴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험적 증거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레비츠키·지블랫 2018; Bermeo 2016; Goodman 2022). 

  시민적 규범은 시민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며, 이는 외부에서 요구되는 기대뿐만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기대를 인식하게 한다(Dalton 2008: 78). 이러한 규범은 일반적으로 투표와 참여에 대한 의무감, 법치주의, 평등, 관용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신념을 포함한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실재한다는 사실, 민주주의가 시민들이 수호해야 할 가치라는 점,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는 점에 대해 공감해야 한다. 이러한 시민들이 보유한 규범에 따라 투표를 포함한 정치적 참여가 영향을 받는다. 포퓰리즘 정치하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고, 당파적 엘리트를 지지하기 위해 민주적 원칙을 포기하며, 반자유주의를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Goodman 2022). 즉, 개인들은 민주주의의 보호보다는 당파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유권자인 시민들이 포퓰리즘 전략에 쉽게 현혹되지 않으려면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포퓰리즘이 시민적 규범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이다. 포퓰리즘의 단순한 ‘우리 대 그들’이라는 수사는 정치적 담론을 이분법적으로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선량한 인민’과 ‘부패한 엘리트’ 또는 ‘우리’와 ‘타자’(예: 이민자, 소수자) 간의 대립을 조장하며 이러한 단순화는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정병기 2021; Mudde and Kaltwasser 2017). 이 같은 맥락에서 포퓰리즘을 ‘사회를 인민과 엘리트라는 두 진영의 적대 구도로 파악하며 정치는 인민의 의사를 가능하면 직접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념’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정병기 2020: 105). 현재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9월 10일에 열린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 도착한 아이티 이민자들이 지역 주민들이 기르는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타자화는 결과적으로 개인들이 공동체나 국가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더욱 깊이 동일시하게 되며, 이는 사회적 결속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동료 시민이 아닌 적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민주적 통치에 필수적인 협력적 정신이 손상될 수 있다. 

  둘째는 민주적 제도와 규범의 약화이다. 포퓰리스트들은 종종 사법부, 언론, 선거 제도와 같은 민주적 제도 및 절차의 정당성에 도전하며 이러한 시스템이 조작되거나 편향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개인들로 하여금 해당 제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하여 민주적 절차에의 참여 가능성을 감소시키고, 권위주의적 경향에 쉽게 빠지게 할 수 있다(정병기 2021; Mudde and Kaltwasser 2017). 따라서 포퓰리즘은 민주적 규범과 절차에 대한 헌신보다는 포퓰리스트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개인들의 시민적 책임감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그 결과로 투표, 지역 사회 봉사, 공공 토론 참여와 같은 시민 활동에 대한 참여가 감소할 수 있다. 

  셋째는 배타적 정체성의 형성이다. 포퓰리즘은 종종 배타적인 국수주의를 조장하며 시민권을 협소하고 민족적으로 정의된 국가 개념과 연결 짓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소수집단을 배제하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할 수 있으며, 포퓰리즘적 시민 담론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소외감을 유발할 수 있다(정병기 2021; Mudde and Kaltwasser 2017). 건강한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체성과 관점이 공존하며 공공선을 위해 기여하는 다원주의에 의해 번영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소수집단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어, 다원주의를 억누르고 더 동질적이며 덜 활기찬 시민 공간을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확증편향의 증가가 집단적 편향성을 심화시키며, 이는 증오와 배제를 기반으로 하는 포퓰리즘 정치의 출현을 촉진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을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시민들은 자신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시민들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정당이나 정파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정파적 이익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3. 포퓰리즘에 대응하는 시민교육의 역할

  한국 사회에서 확산하는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교육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정치적 참여와 비판적 사고의 함양을 장려해야 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시민교육의 본질적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으로 머물지 않고 규칙 준수, 리더십, 타인과의 협력 등을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학교는 학생들에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법,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법 등 민주적 시민 참여에 필수적인 제반 기능을 교육한다.

  현재 포퓰리즘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양극화 해소 및 정당정치의 활성화와 같은 다양한 해결책이 제안되고 있지만 시민교육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필요하다. 많은 이들에게 시민교육이 양성하는 ‘좋은 시민’의 이미지는 권위 있는 인물의 말을 따르고, 이웃에게 친절하며,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시민교육의 목표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논의의 여지는 적다. 그러나 프리덤하우스가 세계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국가로 평가한 북한, 우즈베키스탄, 벨라루스와 같은 국가에서도 이러한 개념은 환영받을 가능성이 있다(Westheimer 2019).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는 국민이 법률과 정책 결정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궁극적으로는 공공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을 원한다. 

  학생들이 공정한 사회를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시민교육은 그들에게 논쟁적인 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며, 비판적 참여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임을 교육하는 데 중점을 둔다. 현재의 이념적 양극화, 정부에 대한 신뢰 감소, 그리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하는 전통과 제도의 약화 등으로 인해 이러한 목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부상하는 포퓰리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시민교육 프로그램은 민주적 사고방식을 함양하기 위해 세 가지 주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첫째, 학생들에게 토론 능력을 배양하고, 둘째,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며, 셋째, 비판적 사고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첫째, 학습자들의 토론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토론 교육은 시민교육의 핵심 요소로 학습자들이 시민으로서 비판적 사고를 발전시키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민주 사회의 기초인 의견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를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하며, 공적 담론에 참여할 수 있는 자신감을 배양한다. 효과적인 토론 학습은 학습자들이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자신의 관점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방법을 습득하게 한다. 또한 상대방이 아닌 그들의 관점에 도전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성숙한 토론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할 수 있다.

  즉, 학습자들은 시사 문제와 정치적 이슈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함으로써 논리적 사고 및 의사소통 능력을 발전시키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선, 학습자들이 편견 없는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토론 과정에서 경청하고 상대의 발언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감정을 자제하는 태도는 건설적인 토론을 가능하게 한다. 학습자들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주장 전개 방법, 근거 찾기, 반론 제시 및 요약 방법 등을 익히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함으로써 효과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이러한 토론 과정을 거쳐 학습자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참여 의식을 고양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관점을 가르쳐야 한다. 시민교육에서 ‘다양한 관점’의 교육은 학습자들에게 사회 문제를 보다 폭넓고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특정한 시각이나 입장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이슈를 다각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학습자들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방식이다. 즉, 동일한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 상반된 입장과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을 반영한 의견을 제시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학습 과정을 거치면서 학습자들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과 논리적 사고력, 그리고 비판적 분석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

  다양한 관점의 습득은 민주주의의 본질인 다양성과 상호 존중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학습자들은 이를 통해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복잡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학습자들은 다양한 관점을 학습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견해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편견을 줄이고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포퓰리즘이 전파하는 배타성을 극복하고 포용적 시민성을 함양하는 데 필수적이다. 

  셋째,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시민교육에서 비판적 사고력의 함양은  정보와 주장을 논리적이며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 목표이다. 이는 청소년들이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접할 때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논리적 근거와 증거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정치적 이슈와 사회적 논쟁이 빈번한 현대 사회에서는 비판적 사고력이 시민으로서의 책임 있는 참여와 더불어 건강한 민주주의의 유지에 필수적이다. 
 학생들이 이러한 능력을 갖추게 되면 사회적 및 정치적 문제를 바라볼 때 자기중심적 사고를 배제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우선하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학습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다양한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에는 잘못된 정보와 편향된 의견이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함양하는 비판적 사고력은 정보과잉 시대에 올바른 정보를 선별하고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도록 돕는 필수적인 능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포퓰리즘이 시민적 규범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심각할 수 있다. 이는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며 포용적인 시민 정체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교육적 개입으로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시민교육은 학습자의 토론 능력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며 비판적 사고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포퓰리즘의 분열적 경향에 저항하는 건강하고 탄력적인 민주 시민성을 함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4.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주는 교훈

  민주주의는 헌법에서 규정한 제도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으며, 이러한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성숙한 시민이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윤정인 2017). 따라서 시민교육의 주요 과제는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기능을 함양하는 일이다. 포퓰리즘 정치인에 대한 환호와 기대, 그리고 실망의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시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기능을 갖추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교착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판단력과 기능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시민교육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독일의 정치교육 모델은 우리나라의 시민교육 담론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독일은 동서독 간의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에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를 도출하였다. 이 합의는 이념적 대립을 초월하여 독일의 미래를 위한 핵심 요소로서 청소년을 위한 정치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동의 이해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정치적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우려는 교실 내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정치교육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이 정치적 참여로부터 멀어지고 탈정치화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 과정에서의 소외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정치교육의 모범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독일에서는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정치교육의 기본 지침으로 기능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특히 서독에서는 학교의 정규과목으로서 정치교육이 다루어야 할 내용에 대해 오랫동안 갈등이 지속되었다. 1950년대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과, 미국식 실용주의 교육을 바탕으로 국가 지향적인 정치교육보다는 경험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충하였다. 1960년대에는 전통적인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비판과 사회 개혁, 반지배 및 저항의 사회운동이 정치교육의 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69년 서독에서는 사회민주당과 자유민주당이 연정하여 정권을 교체하였다. 새롭게 집권한 진보세력의 광범위한 개혁 정책은 특히 교육 분야에서 뚜렷한 대립을 초래하였는데 진보진영이 집권한 주와 보수 진영이 집권한 주의 정치교육은 명확히 구분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1976년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좌우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론가, 실천가, 교육자 들을 초청하여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 토론회에서는 각 참가자들이 정치교육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교환하였으며, 이러한 논의의 결과로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을 요약한 것이 ‘보이텔스바흐 합의’이다. 이 합의는 <표 1>에 제시된 세 가지 원칙으로 구체화되었다.

<표 1>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3대 원칙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세 가지 원칙은 현재 시민교육에 유용한 지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치교육은 필연적으로 수업 주제로 논란이 되는 공공 이슈를 활용해야 하며, 이러한 주제들은 학습자의 비판적 사고능력, 사회 문제에 대한 탐구능력, 가치판단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현실 문제를 학교로 가져오는 것에 대해 학교와 교사가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정치적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사회에서 마주하게 될 다양한 논쟁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대우재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참고문헌

    강원택, 2021, “한국 정치의 위기와 대의민주주의,” 『지식의 지평』 30: 73-86.

    구본상, 2024, “2024년 포퓰리즘 정치의 확대, 그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함의,” Global Issues Brief 18: 7-18.

    권혁용, 2023,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 『한국정치학회보』 57(1): 33-58.

    김주형·김도형, 2020,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인민의 민주적 정치 주체화,” 『한국정치연구』 29(2): 57-90.

    김현섭, 2023, “민주주의의 퇴행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발생, 진행하며, 왜 문제인가?: 조망과 평가,” 『한국정치연구』 32(3): 29-67.

    레비츠키, 스티븐·대니얼 지블랫 (박세연 역), 2018,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서울: 어크로스.

    박상영, 2023, “한국의 포퓰리즘과 시민교육: 고등학교 ‘정치와 법’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기술 내용 분석,” 『시민교육연구』 55(3): 39-68.

    오태현, 2024, “2024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 의미와 전망,” 『세계경제포커스』 7(25): 1-10. 

    윤정인, 2017,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도구화?: 포퓰리즘의 도전 앞에 선 정당민주주의와 시민교육,” 『헌법연구』 4(2): 61-80.

    정병기, 2020, “포퓰리즘의 개념과 유형 및 역사적 변화 : 고전 포퓰리즘에서 포스트포퓰리즘까지,” 『한국정치학회보』 54(1): 91-110.

    정병기, 2021, 『포퓰리즘』,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Bermeo, Nancy, 2016, “On Democratic Backsliding,” Journal of Democracy 27(1): 5-19.

    Dalton, Russell J, 2008, “Citizenship Norms and the Expansion of Political Participation,” Political Studies 56(1): 76–98.

    Foa, Roberto Stefan, and Yascha Mounk, 2017, “The Signs of Deconsolidation,” Journal of Democracy 28(1): 5–15.

    Goodman, Sara Wallace, 2022, “Good Citizens in Democratic Hard Times,” Annals, AAPSS 699(1): 68-78.

    Mudde, Cas, and Cristóbal Rovira Kaltwasser, 2017, Popu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Westheimer, Joel, 2019, “Civic Education and the Rise of Populist Nationalism,” Peabody Journal of Education 94(1): 4-16. 

  • 자료

    『한겨례신문』, 2024. 7. 14일자

저자 소개

모경환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시민교육, 다문화 교육, 사회과 교육이 관심 분야이다.